leibi 2021. 10. 26. 22:48

휴가라고 하지만 비교적 일찍 일어났다. 혼자서 미사를 봉헌했다. 혼자 봉헌하는 미사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거나, 아주 빨리 마친다. 오래 걸릴 때는 말씀보다 미사경문에 집중하고 미사경문을 새기며 드리기 때문이다. 빨리 마치는 것은 말씀과 경문을 눈으로 훑어 내기기 때문이다. 출근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버스안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 7시 반쯤에는 엄청 붐볐을 것이다. 마스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가 없고, 눈만 보인다. 모두들 말이 없다. 침묵의 버스가 따로 없다. 코로나가 아니었을 때에도 지하철과 버스안이 침묵이었는데, 코로나 때는 더 심해졌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건강진단하는 곳을 갔다. 국민건강공단에서 하는 정기 체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았다. 기본적인 검사였다. 시력이 더 나빠졌고, 두 눈 사이의 시력차가 더 커졌다. 눈이 보이기는 하지만 외부로부터 오는 정보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눈이 더 나빠질까봐 걱정되었다. 키는 1센티미터 쯤 줄어들었다. 중력의 법칙과 나이듦에서 오는 것이어서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혈압도 조금 높아졌다. 재차 측정을 했지만, 많이 낮아지지는 않았다. 열받게 하는 일이 많아서 인가.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과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너그러이 받아들여야 할 텐데. 그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혈압이 높아졌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 몸속에 내가 모르는 화가 쌓이고 쌓여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버럭 화를 내는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이 아니라 자기 리듬을 따라가는 것을 보는 게 씁쓰름하다. 지금까지 정신이 몸둥아리를 끌고 갔다면, 이제는 몸이 이끄는 대로 정신과 마음이 순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년말이면 공단 건강검진이 바쁠 것 같았고 수면 내시경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예약할 수가 없었고, 비수면 내시경 마저 10월에는 이틀 밖에 없어 잡은 날짜가 오늘이었다. 일반 내시경을 상당히 오래 전에 했던 기억이 있다. 검사하면서 구역질이 나고 복부 팽창감이 아주 거북했다는 기억이 있다. 오늘도 똑같았다. 목구멍 속으로 이물질이 들어가는 불쾌한 기분. 뱃속에서 무엇인가가 돌아다니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검사하는 사람이 몸의 긴장을 풀라고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본인도 알 것이다. 슬프고 아플 때만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약간의 눈물이 났다. 뱃속에서 이물질이 돌아다니는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끝나면서 불쾌함이 바로 사라졌다. 그런데 입에서 흘러나오는 침을 닦기 위해 여자화장실로 들어간 것을 보면, 정신이 쇼크를 받은 것이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검사가 끝났다. 바로 내려와도 되었지만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람들과 소음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중속에서 더 외로울 수 있지만, 군중속에서 더 자유로울 수도 있는 법이다. 어쩌다 하는 해외여행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평일인데도 고속버스에 빈자리가 없었다. 언제부터 동해안으로 가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지. 묵주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차안에서 묵주기도 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람은 손가락으로 묵주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휴가 때 쌓인 피로를 풀어야 할 상황이다. 저녁에는 글방 모임에 참석했다. 분반하기 전의 마지막 모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