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도청과 관련된 이야기
leibi
2021. 10. 4. 22:20
미국 정보기관에서 도청 전문가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어떤 사람의 경험담에 의하면 특정한 개인에 대해 24시간 도청을 계속하다보면 ‘도청이라는 게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가도 한다. 한 인격이 완전하게 까발려지면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마저 훼손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 vs 사람>, 정혜신, 개마고원, 2005, 129)
* 성인 대부분이 자기 분신처럼 생각하고 있는 휴대폰. 자기로부터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기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휴대폰을 하루 정도 도청한다고 합시다. 더 나아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휴대폰을 하루동안 있는 그대로 도청한다고 가정합시다. 끔찍할 것입니다. 도청하고 있는 사람에게 끔찍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도청당하고 있는 사람이야 자기의 모든 것이 노출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테니 일상처럼 생활하게 될 것이고.
투명한 사회란 무엇일까? 개인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일까? 개인의 외적 행동뿐 아니라 개인의 느낌과 정서적인 측면도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하는 곳일까? 그리하여 유리처럼 맑은 사람으로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까? 더불어 투명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흠잡힐만한 것이 없는 사람일까?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개인의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고 하면, 끔찍한 곳이고 끔찍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비밀이 많이 있는 곳도 괜찮다는 말은 아닐테고.
개인의 양심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 개인의 양심에 따라 할 수 있는 자유, 개인의 고유함이 무시되지 않는 생활. 이런 바탕 위에서 나를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대하며 사는 삶.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 이름짓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입니다. 양심이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하고 있으며, 양심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런 양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주제입니다. 좀 더 다각적으로 심층적으로 인간학과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 성인 대부분이 자기 분신처럼 생각하고 있는 휴대폰. 자기로부터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자기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이런 휴대폰을 하루 정도 도청한다고 합시다. 더 나아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휴대폰을 하루동안 있는 그대로 도청한다고 가정합시다. 끔찍할 것입니다. 도청하고 있는 사람에게 끔찍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도청당하고 있는 사람이야 자기의 모든 것이 노출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테니 일상처럼 생활하게 될 것이고.
투명한 사회란 무엇일까? 개인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것일까? 개인의 외적 행동뿐 아니라 개인의 느낌과 정서적인 측면도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하는 곳일까? 그리하여 유리처럼 맑은 사람으로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일까? 더불어 투명한 사람이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흠잡힐만한 것이 없는 사람일까?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며 개인의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고 하면, 끔찍한 곳이고 끔찍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비밀이 많이 있는 곳도 괜찮다는 말은 아닐테고.
개인의 양심이 자리잡고 있는 공간, 개인의 양심에 따라 할 수 있는 자유, 개인의 고유함이 무시되지 않는 생활. 이런 바탕 위에서 나를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대하며 사는 삶.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 이름짓든,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입니다. 양심이 하느님의 모상을 간직하고 있으며, 양심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그런 양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주제입니다. 좀 더 다각적으로 심층적으로 인간학과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