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1. 9. 30. 21:59

오래 전에 외국어를 이태리어를 배워보려고 노력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문법을 공부하고 읽는 연습을 했고, 쓰기도 공부했습니다. 물로 말하기도 연습해야 했습니다. 말하기 연습으로 자주 사용하는 것이 '자유대화' 시간이었습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면서 이태리어와 친해지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재미있긴 했지만 유난히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을 하며 살 때에도 별로 말이 없었는데, 짧은 외국어 실력으로 무슨 할 이야기가 있었겠습니까. 외국어를 습득하지 못하면 자기가 하고 싶을 말을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말만 하며 살겠구나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서너 살 먹은 애기처럼요. 그리되면 생활할 때 답답하고, 생활반경이 줄어들게 되고, 고립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말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여러 층위라고 해도 됩니다. 외국어 초심자처럼 자기가 할 수 있는 말만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과 소리로 말해지고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게 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 어떤 제약을 받지 않고 자기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고, 자기 의견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할 말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앵무새가 로보트처럼 자기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말만 하는 경우입니다. 분명히 자기가 말하지만 자기가 없는, 건조한 말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주입된 말만 해야 한다면 슬픈 일일 것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이고 상대방을 헷갈리게 하려는 거짓전술을 쓸 때입니다. 말의 역기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우입니다. 이 외에도 아주 많은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글도 말과 같이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길든 짧든, 신앙과 관계된 글이든 그렇지 않든, 나와 관계된 것이든 무관하든... 이런 시간을 가지면서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재가 많다고 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한 생각이 짧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하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을 넓게 하라는 말이면서 동시에 깊이 파고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넓게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면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깊게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생각'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금을 얻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사금을 얻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모래밭은 체로 쳐야 합니다. 힘들지만 그런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금이 아니라 땅속에 묻혀 있는 금을 파내기는 훨씬 더 힘들 것입니다. 금광을 발견하고 금맥을 따라 파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면 사금과 비할 수 없는 양질의 금을 훨씬 많이 얻을 게 될 것입니다.    

 

매일 글을 씁니다. 키보드를 두드리기 전에 지향했던 것과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고 마쳐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가 쓰고 싶어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쓸 수 밖에 없는 글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외국어 초심자가 할 수 있는 말만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쓰고 싶은 것을 자유롭고 정확하게 쓰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대해 그리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보고 보여지는 모든 것에 대해서,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대상이고 주제이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써보고 싶은 것입니다. 구체적인 일상의 체험을 문자로 명료화 시킨 다음 버리고 비워나갈 때 그 밑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고, 그 글을 읽고 크고작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더 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이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글쓰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생존과 관계되는 일이라고 하면 과장된 말처럼 들릴 것 같고, 하느님을 찾아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한다면 그런대로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