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내줌
비가 오면 물꼬를 터주러 나갑니다.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조금 치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흐르지 못하고 있었던 물이 빠져 나갑니다. 힘차게 흐르는 물이 시원합니다. 마음속 막힌 것이 뚫린 것처럼 시원합니다. 큰 힘 들이지 않고 물이 가야할 길을 뚫어 준 것입니다. 물길을 터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말길을 터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의 가슴속에 쌓아두었던 말을 받아줄 넉넉한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의 말을 잘 듣다보면 마음속에 못다한 말이 느껴집니다. 어떤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 쌓여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막힌 물이 흐르도록 물꼬를 터주는 것처럼. 사람들은 누구가 자기 말 하기를 좋아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말을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교회 잡지에 작은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자기에게 그런 짐이 주어졌는지 모릅니다. '순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강요하고 윽박지르듯이 요청한 것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고민하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습니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날짜에 한줄이라도 쓸 수 있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다시 시간이 흘렀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저녁 식사 후 책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네시까지 썼습니다. 글을 쓰면서 의례적인 변명과 겸손, 보잘 것 없는 삶과 서툰 글솜씨와 같은 이야기를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살면서 겪었던 하느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썼을 뿐입니다. 원고를 보냈고, 잡지가 나왔고, 몇 권의 잡지를 받았습니다. 자기가 쓴 글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글과 함께 실렸을 사진을 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남편에게 잡지를 주면서 자기 글이 실렸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몇 일이 지났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물었습니다. "제가 쓴 글 읽어 보셨어요?" "응." "어땠어요?" "잘난 체 하고 있었더만." "...... " 그 뒤로 자기가 쓴 글에 대해 아무에게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몇 일이 지났습니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해 가까이 지내는 몇 사람이 이야기해 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말이었습니다. "자기가 쓴 글 읽었어." "사진 잘 나왔데..." "글 잘 썼데..." 이런 말들이 영혼없는 멘트처럼 들려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나요?" "글쎄요.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쓰신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네요. 남편이든 주변 사람이든 자매가 쓰신 글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분이 쓰신 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글쓰기의 힘듦과 기쁨, 함께 글을 쓸 때 주어지는 축복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동료들의 격려와 위로 등에 대해서. 글쓸 때의 힘듦은 자기 글을 읽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때 기쁨으로 바뀝니다. 글을 쓰면서 만나게 되는 뚫고 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두터운 벽은 그동안에 쌓아두었던 내공으로 뚫고 나갈 때 무너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와 또 다른 자기 사이에 길을 내는 것이고, 나와 사람들 사이에 작은 길을 만들어 가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자기 안으로 흘러 들오실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이고, 하느님을 찾아 올라가는 길이라고 하면 더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