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없는 사람
"엄마,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재를 바다에 뿌려주세요. 물결따라 파도따라 세상 모든 나라에 가고 싶어요." "응, 그렇게 하마." 아이가 엄마보다 먼저 떠난 다음, 엄마는 아이의 소원대로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닷가 옆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방이었습니다. 문을 열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그곳이 참 좋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바닷가를 떠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결따라 파도따라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아이가 아파트 앞 바다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자리를 떠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때가 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과 관련된 기억이 많은 곳이어서. 어떤 사람에게 그곳에서 기다리마라고 약속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유로 되돌아 가는 길을 끊어버리고, 그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다림의 슬픔에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겠지만, 기다리다보면 슬픔도 희망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밑에 성모 어머니가 서 계십니다. 십자가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곳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성모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기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믿기에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바닷가 방파제에 세워진 등대와 같은, 희망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