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살아있음
정약종은 위관의 심문에 이끌리지 않았다. 정약종은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스스로 진술했고, 그 이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매를 불렀고 다시 침묵으로 매에 대답했다. 정약종, 너의 사호는 무엇이냐? 아우구스티누스다. 사호가 아니라 세례명이다. 해괴하구나. 네 아비가 지어분 본명을 버린 까닭이 무엇이냐? 본명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새롭게 태어남이다... 들보에 매달린 정약종이 그개를 들어서 위관을 바라보았다. 나의 형 정약전과 나의 아우 정약용은 심지가 앝고 허약해서 신앙이 자리 잡을 만한 그릇이 못된다. 내 형제들은 천주학을 한바탕의 신기한 이야깃거리로 알았을 뿐, 그 계명을 준행하지 않았고 타인을 교화시키지도 못했다. 아마도 정약종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진심에, 형과 동생을 이 세상의 땅 위에 며칠 더 살려주고 가려는 약종의 뜻이 담겨있었던 것인지를 정약전은 헤아릴 수 없었다. 정약전은 그 질문을 향해서 생각을 끌고 나갈 수가 없었다. 헤아릴 수 없었지만 약종의 그 진술 덕에 약정과 약용은 유배로 감형되어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바다는 땅 위에서 벌어진 모든 환란과 관련이 없이 만질 수 없는 시간속으로 펼쳐져 있었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에서, 움트는 시간의 냄새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어디인가가 흑산도였다. 죽지 않기를 잘했구나. 저렇게 새로운 시간이 산더미로 밀려오고 있으니. 저무는 물가에서 정약전은 침을 삼켰다. 추위 속에서도 아미에 식은땀이 맺혔다. (<흑산>, 김훈, 학고재, 2011, 15-19)
☞ 천주교 신자들은 정약전과 정약용이 배교를 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분들이 배교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는 형님과 아우가 이 땅에서 하루라도 더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을 것입니다. 정약종의 이런 바람대로 형님과 동생은 살아남았고, 형님 약전은 자기가 살아있음에 대해, 살아있기에 아름다운 석양과 영겁의 시간을 품고 있지만 시간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은 바다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