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글/생활 속에서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사제

leibi 2021. 6. 27. 11:43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사제여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여러 방식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에 대해 많은 해설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과 관련된 개인의 체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멋진 가르침에 따라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양냄새를 풍기게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양의 냄새'. 양들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양의 냄새'라고 하면 어떤 냄새를 말하는지 잘 모를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나는 풀향기가 섞여 있는 코를 찌르는 냄새인지, 돼지 움막에서 나는 역겨운 냄새인지, 닭장에서 나는 닭똥 냄새와 같은 것인지, 감이 감이 오지 않습니다. 양이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돼지똥과 돼지움막에서 나는 그런 역겨운 냄새는 아니겠지만, 향긋한 냄새는 아닐 것입니다. 풀을 뜯어 먹기위해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고, 물이 적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양에게서 나는 냄새가 난다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냄새는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양에게서 향기가 난다면, 교황님께서 '양의 냄새가 나는 사제'가 되라고 권고하지도 않으셨을 것 같고요.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살된 야이로 회장장의 딸을 낫게 해 주시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르기 위해 밀쳐대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열두 해 동안 하혈하고 있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갈 용기도 자신감도 없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가고 싶다는 간절함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쏠려 가면서 그들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댑니다.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평안히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구원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만, 여인에게는 길고 긴 투병생활로부터 빠져 나왔다는 것 자체가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야이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동안에 죽은 소녀 때문에 집안이 소란했습니다. 사람들이  큰소리로 울고 있었고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혼란과 소란 한가운데로 예수님께서 들어가십니다. 그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녀가 살아났고, 예수님은 소녀를 자기 부모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양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는 예수님. 양냄새가 나는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이십니다. 양과 더불어 살고, 양의 냄새가 난다는 것은, 생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양들은 저곳에 있고 이곳에서 양을 보면서 '응. 힘들고 고통스럽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이 처해있는 실제상황을 그대로 겪고, 양이 느끼고 생각하고 결심하는 것에 동화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양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까?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저만치 홀로 계시며, 모든 정황을 조정하고 계시는 분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이 들때는 이사야 예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하면 됩니다. "나는 혼자 확을 밟았다.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와 일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분노로 그들을 밟았고 진노로 그들을 짓밟았다. 그래서 그 즙이 내 옷에 튀어 내 의상을 온통 물들게 한 것이다.(이사 63, 3-4)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포도확에서 포도를 밟은 사람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온몸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받아들입니다. 그 고통에 짓눌리셨으며,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양의 냄새'가 난다는 것은 포도주 확에 들어가 포도를 밟는 사람의 옷에 붉은 포도즙이 뭍는 것과 같습니다. 붉은 포즙으로 옷이 온통 붉게 되지 않을지라도, 붉은 포도즙 한두 방울이라도 자신의 옷에 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양들의 냄새가 나는 사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모든 양들의 짐을 맡아져라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양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 삶의 애환과 기쁨과 복됨을 함께 하고, 이렇게 하면서 힘에 겨운 일이 생길 때 양들의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 의탁하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