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고 새로워 지고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없고 흠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2베드 3,13-15) 성무일도 제4주간 토요일 아침기도의 성경소구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란다고. 왜, 새 하늘과 땅을 바라까요?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과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이 정말로 아름답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란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전적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과 세상을 바라며 살고 있는 존재라고 해야겠죠. 사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지만, 그곳으로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을까요.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이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힘들겠지'라고 생각만 하는 듯 합니다.
자기라는 좁은 영역이든 사회와 국가라는 거시 세계이든 관계없이 기존의 것이 무너지지 않으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기존의 것이 무너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사라집니다. 자기가 이룩한 일들이 물거품으로 됩니다. 명예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합니다. 칭찬과 우러름이 비난과 멸시로 바뀝니다. 그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들을 의심스런 눈으로 봅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갑니다.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는데 변두리로 밀려나고 잊혀집니다. 기존의 삶과 세상이 무너질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이것을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베드로 2서에서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티와 흠'에 대해 함께 말합니다. 이런 '티와 흠'은 그냥 없어지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무너져내리면서 자기 마음과 몸과 생활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티와 흠'이 빠져나오고 정화되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것들이 빠져나갔을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 평화로이 머물수 있고, 이것을 구원받았다고 말하며,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는다는 말이고, 하느님을 안다는 말이며, 하느님 앞에 머문다는 말입니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안에서 어떤 일인가 하게 되고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기 삶을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무너지고, 무너지는 쓰라림을 맛보고, 그것을 통해 정화되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 모든 과정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한 존재로서 살고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