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선다
길을 나선다. 목적은 하나 걷기 위해서다. 다른 것은 모두 부수적인 것이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몰라 길에 나섭니다'라는 싯구절이 떠오른다. 몇십 년 전에 수없이 되되였던 구절이다. 그때와 지금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시간이 흘렀고, 외적인 모습이 변했지만, 질문하고 찾는 마음을 똑같다. 오히려 지금이 더 절실한 것처럼 여겨진다. 과거의 찾음에는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의 찾음에는 절박함뿐이다. 소나기가 올것처럼 캄캄하다. 주변이 어두워지고 먼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저렇게 들릴 것이다. 시원한 바람과 후덥지근한 바람이 뒤섞여 있다. 나뭇잎이 요란스레 흔들리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지나가는 비인데 오랫동안 쏟아지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길거리 버스 승강장으로 피한다. 비가 오면 맞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비가 오니 피하게 된다. 잠시 멈춘다. 아스팔트 빗물 위를 자동차가 지나간다. 빗물이 갈라지고 빗물이 공중으로 튀어올랐다가 사라진다. 버스를 기다리던 아주머니가 차를 타면서 타지 않느냐는 눈길로 바라보다. 걷기 위해 나온 사람인 줄 모르시니까. 걷기 위해 나왔지만 조금 전에는 조금이라도 빠른 지름길을 택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지. 고통은 나누어 가질 수가 없다. 온전히 자기 몫으로 똑 떨어지는 것이 고통이다. 고통으로 너와 나 사이에 장벽이 세워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너가 나에게 올 수 없고, 내가 너에게 갈 수 없게 된다.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고 필사적으로 애를 쓰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절망하게 될 뿐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는 것인가. 슬픔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왜,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 앞에서 싫컷 울고 마음껏 울고 났을 때 슬픔이 옆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때 말이다.사람 사는 게 묘해서, 저런 상태에서 어떻게 견디어 내지 생각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모르지. 죽지 못해서 살아간다고 하시려나. 비가 그치고 다시 해가 나타난다. 걸으러 나왔으니, 걸으면 된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생각의 씨앗이 발아하여 자라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밤의 어둠으로 들어가고,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