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인 과거
작은 형님으로부터 40년도 더 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님은 신혼 초였고,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때였다. 상하방이라고 부르는 신혼집에 철딱서지 없는 시동생이 끼어든 것이었다. 형님께서 많은 말씀을 하시지 않아셨다. 신혼초에 느꼈던 형수의 어려움에 관한 한두 마디가 전부였다. 몇 십 년 넘게 고해성사 주면서 발달된 예민한 촉각으로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작은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막내 시동생을 돌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부당하다는 생각이 형수에게 들었을 것이다. 큰형님과 큰형수가 멀리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바로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는데.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작은 형님 댁에서 일 년 정도 함께 살다 직장 생활하고 있었던 누나와 함께 생활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 후 내가 다른 도시로 갔기 때문에 작은 형수와 함께 이야기 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작은 형수와 내가 비교적 말이 적은 사람이었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없어, 통상적인 인삿말과 의례적인 이야기가 전부였다.
나때문에 작은 형수가 신혼초에 겪었을 어려움에 대해서 작은 형님이 말씀하시기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냈다. 그래서 작은 형수의 어려움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과 시댁으로부터 받았다고 여겼을 부당함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 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이런 시동생이 얄미웠을 것이다.
철없은 시동생과 시댁과 관련된 힘든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이 그 후의 모든 기억들을 덮어 버렸을 것이다. 속으로만 파고드는 아픈 기억과 쓰라린 기억과 상처받은 기억은 긍정적인 모든 것을 쓸어담는 블랙홀과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하찮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풀려지고 해소되지 않으면 안되는 기억인 것이다.
작은 형수를 직접 만나 철없은 시동생때문에 겪었을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형님에게 약속했던 말을 형수의 일정과 나의 일정 때문에 지킬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전화로라도 말씀드리고, 언젠가 직접 만나 아주 오래되었지만 현재 진행중인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