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바위 위에 물을 부으면 물이 바위 표면을 흘러 내립니다. 화살이 방패에 맞으면 튕겨 납니다. 돌같은 마음 벽을 간직한 마음에 내린 하느님의 은총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거나 비껴가버립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고 메마른 나무 껍질 씹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자애로운 하느님이라고 하지만 무자비한 분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자기가 그런대로 품위를 갖춘 사람인가 했는데 한 마디 말로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내적인 평화로움때문이 아니라,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때가 많습니다. 섬기는 삶으로 불림받았다고 말하지만, 조금이라도 소외된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처럼 머리를 떨어뜨립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하고나서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고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고통스런 길을 가야만 할 때의 두려움의 시간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었던 내외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씁쓸함과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적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삶이라고들 합니다. 인간 고통의 바다에서 하느님 사랑의 바다로 나간다고들 하지만, 말뿐인 것처럼 여겨집니다. 믿음은 자기가 처해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끔 기적이 일어나긴 합니다만, 그것은 별개의 경우처럼 보입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에서 새싹이 나고, 꽃이 핍니다. 꽃이 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죽어가고 소멸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계절의 변화든, 삶의 상황이 변하든, 변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희망이라고 합니다. 변화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때에 대한 기대를 말합니다. 몇 년 전의 일인데, 아득한 일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해외 여행을 떠올려 세요. 내가 그곳에 다시 갈 가능성이 없을 때 더욱 더 그렇게 여겨집니다. 가깝게 여겨지고 멀게 여겨지는 것이 시간과 공간과 관련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사람도 그렇죠. 아주 오래 전 사람인데, 지금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있듯이, 똑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인데 전설속의 사람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성모님과 요셉과 예수님은 아주 가깝게 여겨지지만, 단군 할아버지와 박혁거세와 왕건과 견훤은 사극에서나 존재하는 분들입니다. 그렀습니다. 인간의 삶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고,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