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영성/똘레제

스티븐 호킹

leibi 2021. 1. 30. 22:19

스물한 살에 루게릭 병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몹시 부당하다고 느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병이 일어나야 하는가? 당시 나는 내 삶이 끝났고 내가 느끼는 나의 잠재력을 결코 발휘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 , 나는 내 삶에 대해 평온하게 만족할 수 있다. 나는 두 번 결혼했고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성장한 자식 셋을 두었다. 나의 과학자 경력은 성공이다. .. 나의 장애는 나의 과학 연구에서 심각한 걸림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었던 것도 같다. 나는 학부생에 대한 강의나 교육의 의무를 지지 않았고 지루하고 따분한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오롯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나는 한 사람의 물리학자일 뿐이지만, 대중에게 어쩌면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일 것이다. 이는 과학자가 록 스타처럼 널리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기도하고, 내가 천재 장애인에 대한 통념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가발과 검은 선글라스로 위장할 수 없다. 휠체어가 나의 정체를 폭로한다... 나는 알차고 흡족한 삶을 살았다. 장애인은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일에 집중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아쉬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소련도 일곱 번이나 방문했다... 또한 나는 일본을 여섯 번, 중국을 세 번 방문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남극대륙까지 포함해서)에 가보았다. 한국, 중국, 인도, 아일랜드, 칠레, 미국의 대통령을 만났다.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에 들어가보기도 했고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 오르기도 했으며 무중력 비행도 해보았다... 이론물리학을 연구하며 살아온 세월은 영광스러웠다. 내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무언가를 보탰다면, 나는 행복하다. (<나, 스트븐 호킹의 역사>, 스티븐 호킹/전대호, 까치, 2013, 152-157)

☞ 휠체어에 매여 있었고, 컴퓨터의 도움없이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살 수 없었던 사람이지만, 자유롭게 살았던 사람이다. 자신의 경계를 부수고 뛰어넘으면서 살았던 사람이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그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매순간이 최후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