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한 여자>, 아니 에르노/정혜용, 열린책들, 2013
*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7)
*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 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19)
*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그 어떤 것도 피해 가지 못했다. 최근 25년 동안 넷이 죽었다. 오래전부터 그들이 품고 있는 분노의 허기짐을 채워 준 것은 남자들은 카페에서, 여자들은 집에서 마셔댄 술이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지 않으면 말도 하지 않았다. (31)
* 여자에게 결혼이란 삶 또는 죽음이었으니, 둘이 되어 보다 쉽게 궁지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수도 있고 결정적인 곤두박질로 끝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어야만 했다. (32)
* 어머니는 배움 -예의범절들, 공원의 꽃 이름들- 을 열망했다. 누군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면 호기심 때문에 자신이 지식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주의 깊게 들었다. 정신적으로 향상된다는 것, 그것은 그녀에게 우선 배우는 것이었고, 그 어떤 것도 지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책이 그녀가 유일하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물건이었다. 책을 만지기 전에는 손을 씻었다. (56)
*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 그보다는 그녀가 학교 선생님들과 보다 비슷했으니까. 그녀 안의 모든 것, 귄위, 욕망, 야심이 학교로 방향을 틀었다. (58)
* 청소년기에 들어선 나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왔고, 우리 둘 사이에는 투쟁만미 존재했다. (60)
*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본다. 유년기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치 어떤 다른 어머니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딸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지만, 내게 몇몇 표현들은 추상적인 다른 표현들과는 다르게 객관적으로 되지 않는다. (62)
* 어떤 순간에는 자기 앞에 있는 딸 속에 계급의 적이 있었다. (65)
* 그녀의 이야기는, 세상에 그녀의 자리가 있었던 자기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춘다. 그녀는 정신이 나갔다. 그것은 알츠하이머 병이라고 불린다. 의시들은 일종의 노망에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다. (91)
* 그녀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96)
* 그녀는 또 다른 겨울을 났다. 부활절 다음 일요일에 개나리를 안고 그녀를 보러 갔다. 날이 우중충하고 추웠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가 개나리 가지들을 잡으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다음 날 죽음을 맞았다. (106)
* 오늘 장을 보고 난 뒤 노인 요양원에 가봤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건물은 보다 환하고 거의 안락해 보였다. 어머니가 있었던 방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있던 곳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구나’. 처음으로 깜짝 놀라며 해 본 생각이었다. 21세기의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07)
*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109)
*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려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10)
*** 아니 에르노가 어머니의 죽음 후에 쓴 글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단순하게 어머니를 회상하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를 향한 사모곡도 아니고, 어머니의 역사나 전기도 아니며, 한 여인에 대한 소설도 아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울려 한 편의 드라마, 한 여자에 관한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것은 저자의 어머니가 이세상에서 살고 있었들 때 위대한 일을 이루어낸 걸출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우리 일상생활 어디에서난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평범한 한 여인의 삶이지만, 그 자체로 아주 고유하고 드라마틱한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을 때 어떤 사람으로 죽든, 그가 태어나는 순간 우주가 시작되는 것이며 하나의 별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소설보다 더 멋지고 아름다운 삶, 동화속의 삶보다 더 동화적인 삶, 환상보다 더 환타스틱한 우리의 삶이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아니 에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