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아빠가 말씀하셨어. 엄마가 말씀하셨어. 신부님이 말씀하셨어.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 말에 대한 확실함과 참됨과 진실됨과 무게감을 더합니다. 이런 말 중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어”라는 것도 포함되겠습니다. 어린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권위와 말씀, 관심과 격려와 칭찬의 효력은 대단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 때였습니다. 봄 소풍인지 가을 소풍인지 또렷하게 기억되어 있지 않고요. 점심 먹고 보물찾기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나무등걸이나 돌맹이 아래나 바위틈에 숨겨 놓은 쪽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 쪽지에는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쪽지를 찾아온 아이들에게 노래나 율동을 하게 하고 쪽지에 적힌 보물을 주는 것이었죠. 저는 보물쪽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보물 나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선생님께서 저를 앞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아마 노래 한 곡을 하게 하셨고, 그 댓가로 노트 한 권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보물도 보물이었지만, 보물을 가져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풀이죽어 시무룩하게 있는 저의 마음을 알아 주신 선생님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도 그 선생님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을 나이가 되셨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제 각각이고 왜곡되고 수정 편집되고 희미해져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옛날의 선생님을 뵙고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음, 그랬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인정받았고 사랑받았다는 기억, 자기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었다는 기억, 더구나 그것이 힘과 권위를 지니고 있는 분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 기억은 모든 좋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씨앗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사랑할수 있는 힘이 나오고, 역경을 이겨나갈 수 있는 의지력이 나오고, 다른 사람에게 사심없이 다가가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도 생기는 것입니다.
선생님과 비슷한 ‘신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제가 어렸을 때 만나 선생님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로부터 “신부님이 저에게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 “음, 그랬던가요?”라고 응답하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때 만났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선생님과 비슷한 분들을 만나면서 지금도 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