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계를 살면서
더 나아가 매체와 디지털 세계가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사람들이 현명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깊이 생각하며 넉넉히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도록 영향을 행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의 훌륭한 현인들의 말씀이 넘쳐 나는 정보의 소음과 혼란 속에 들리지 못하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매체들을 우리의 가장 커다란 풍요를 위협하지 않는, 인류의 새로운 문화적 진보의 원천으로 삼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기 성찰, 대화, 사람들과 편견없는 만남의 결실인 참된 지혜는 단순히 자료 축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의 축적은 결국 과부화와 혼란을 일으켜 일종의 정신적 오염을 낳습니다. 현실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동반하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의사소통으로 대체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관계를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끊어 버릴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자연이 맺는 관계보다는 컴퓨터와 그 화면을 통해서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형태의 꾸며낸 감정들이 종종 생겨납니다. 오늘날 매체는 우리 서로가 의사소통을 하며 지식과 감정을 서로 나눌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매체가 다른 사람들과의 고통, 두려움, 기쁨, 복잡한 개인적 체험을 직접 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러한 매체가 흥미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는 반면에 인간관계에 매우 우울한 불만을 야기하거나 외로움이라는 해로운 감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47)
☞ 발달된 인터넷 검색 기능을 통해 과거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자료를 순식간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많고 많은 자료를 다 읽어 볼 수도 없고, 그 많은 자료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의 어줍잖은 생각보다 뛰어난 생각들이 널려 있어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자기 생각이 들어갈 자리도 줄어듭니다. 수동적으로 될 가능성과 ‘자기’의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많습니다. 정보화 시대의 그늘입니다.
정보 교환과 이동의 신속성 때문에 삶의 경중이 흐릿해집니다. 자기와 정 반대편에 일어난 전쟁 소식이 생중계되지만 그에 대한 심각성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많고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생중계되는 전쟁에서 순식간에 개그 프로그램으로 이동합니다. 폭력의 현장이 불편해서이고, 자기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이 드러나는 것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모니터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민낯으로 만났을 때 드러날 수 있는 것들이 걸러진다는 말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드러내거나,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끊어버리면 됩니다. 실시간으로 대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정제되어 있거나 편집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의견이 몇 년 뒤에 어떻게 보여질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지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년 전에도 이런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었네라고 생각하며 삶에는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볼지 지금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삶과 주변의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마치 병든 육신이 고름을 축적해가듯 인류가 그러한 상황들을 야기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류는 이미 그 자체의 엄청난 수효와 거기에서 비롯되어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문제에 싫증이 나 있었으며, 그것은 마치 커뮤니케이션의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증대되는 물적.지적 교류에서 생기는 마찰 때문에 인류의 피부가 염증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사회집단들 상호간에 거리가 좁혀졌을 때, 그들이 고름처럼 분비해내는 이러한 모든 어리석고 증오스럽고 경망스러운 현상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겪은 것이 아니었다.”(, c. 레비-스트로스/박옥줄, 한길사, 2012, 127)
레비-스트로스가 1937-1938년 브라질에서 체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여년이 지난 1955년에 쓴 글인데, 그때 벌써 사람들의 잦은 교류로 파생될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말하고 있고 체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문제와 어려움에 대해 예견한 통찰력이 놀랍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