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 도종환 -
☞ 데미샘에 간 적이 있다. 섬진강의 발원지다. 높지 않은 산에 있었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샘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흘러나오는 물줄기의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 데미샘에서 물을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던가? 최초의 섬진강물이 남해로 들어갔던 때가 언제였을까? 바닷물에 섞였던 그 물은 어디로 갔을까? 하늘로 올라가 비가 되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서 데미샘에서 흘러 나와, 다시 남해로 들어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으리라. 그동안 가축의 오물로 범벅이 된 지류가 합류하면서 혼탁하게 되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깨끗한 지류는 없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 흐르고 흘렀을 것이다. 흐르면서 정화되고 흐르면서 맑은 마음 깨끗한 마음으로 떠났던 고향, 데미샘을 기억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 깊숙한 곳을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다. 우리 마음속에도 생명이 강이 흐르고 있다. 이 강들은 하느님의 생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강들이 서로 만나 역사가 된다. 내 삶과 역사의 주관자인 하느님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