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영성/똘레제

옥수수와 나

leibi 2020. 11. 29. 21:19

한 정신병원에 철석같이 스스로를 옥수수라 믿은 남자가 있었다. 오랜 치료와 상담을 통해 자신이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겨우 납득한 이 환자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귀가 조치되었다. 그러나 며칠 되지도 않아 혼비백산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아니, 무슨 일입니까?" 의사가 물었다. "닭들이 나를 자꾸 쫒아다닙니다. 무서워 죽겠습니다." 환자는 몸을 떨며 아직도 닭이 자기를 쫒아오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의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환자는 말했다. "글쎄, 저야 알지요. 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김영하, <옥수수와 나>)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것이 달라진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따라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 뿐 아니라, 세상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자기를 어떤 사람으로 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 인식과 행동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기가 바뀌면 되고, 자기가 포기하면 되고, 자기가 손해보면 문제가 해결되고, 자기가 용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럴까요?

 

요새 제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세상을 자기 혼자만 살아가면 자기만 바뀌면 된다. 그렇지만 그런 삶은 없다. 좋든 싫든, 예쁘던 밉든, 기쁘든 떫떠름 하든, 다른 사람과 엮여져 있다. 나만 바뀌면 된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상대방을 없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에 기도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도가 심리치료나 심리요법은 아니지만, 심리치료와 심리요법에서 추구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기도 중에 상상력을 사용해서 하는 기도 방법이 있다. 이 기도방법에는 세 위격이 참여한다. 나, 상대방, 예수님이다. 상상력과 기억을 을 충분히 동원한다. 상상과 기억을 통해 자기와 그 사람과 관련된 말과 일을 지금 이 자리로 소환한다. 그것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고 그것에 자기와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살핀다. 이런 내적인 작업이 충분히 했다라고 생각되면, 다음에는 그와 관련된 사람들은 초대한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그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준다.그 다음 단계로 자기와 그 사람 가운데 주님을 초대한다. 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분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주님을 가운데 모시고, 자기와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한다. 물론 주님께서도 당신의 이야기를 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면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1-2분안에 글로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몇 시간 몇 일이 걸릴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위격의 대화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일상에서 그대로 실행해 본다. 그리고 위와 같은 방식의 가상 대화를 다시 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상대방과 직접 만나 자기가 '옥수수'가 아님을 밝히는 것이고. 여기까지... 다음에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