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0. 11. 4. 20:49

감정 소모전처럼 힘든 것도 없습니다. 대부분 자존심 싸움입니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지만, 우위에 서기 위한 힘 겨루기입니다. 즐기며 살아도 부족한 삶을 경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를 보며 씁쓸하지만, 어떻게 해 볼 수 없이  쓸려가고 있는 모습은 측은하기만 합니다. 말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만 세상사는 일이 말과 생각으로만 되는 건 아니죠.

 

백과 흑이 또렷하게 대비되고, 합격과 불합격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멀 듯,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상대가 있습니다. 나이테를 보면서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언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있었습니다. 말할 것이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이테의 동심원처럼 부드럽고 유려하게 무엇인가 연결되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잡아 내고 싶었지만, 그 마음만 간직하고 그만 두었습니다. 딱, 거기까지 였습니다. 내가 찾고 있었고 말하고자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표현된 글을 만났을 때의 허탈감과 자괴감. 물론 마음속에 있었던 엉긴 실타래가 풀리는 듯한 시원함과 함께.

 

"나무의 역사는 제 몸속에 기록된다."

"나이테는 자연현상들 중에서 인간의 책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데, 이 친근감은 나이테의 문양이 생명을 통과해 나온 자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테는 나무가 쓴 책고도 같고 식물학자들이 그 책을 읽어내서, 나무의 책을 인간의 책으로 바꾸어준다. .. 지구의 땅 위에 솟아난 나무는 태양의 흑점과 몸으로 교신하고 있었다."

"그 동심원의 깊은 안쪽은 고요하고 단단해 보인다."

"나무는 개체안에 세대를 축적한다."

"(나무의) 젊음은 바깥쪽을 둘러싸고 늙음은 안쪽으로 고인다."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이 완성은 적막한 무위이며 단단한 응축인 것인데 하늘을 향해 곧게 서는 나무의 향일성은 이 중심의 무위에 기대고 있다. 무위의 중심이 곧게 서지 못하면 나무는 쓰러지고 거죽의 젊음은 살 자리를 잃는다."

"나무들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때, 바퀴는 굴러도 바쿠의 중심축의 한 극점은 항상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극점이 움직인다면 자전거 바퀴의 회전운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적막한 중심은 나이테 동심원 속에 있고 자전거 바퀴 속에도 있다."

(<자전거 여행 1>, 김훈/이강빈, 문학동네, 2014, 105-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