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아직도 비입니다. 몇일 째 비가 오는지 세어보지 않았지만 열흘이 더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 저녁무렵에는 아주 멋진 노을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한계령과 대청봉은 황금빛으로 가득했습니다. 안개와 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다시 잿빛 하늘이었고 그리고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 이른 아침 경당에서 낙숫물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자기 멋대로 떨어지는 소리였지만 조금도 귀에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와 마음을 맑게 해 줍니다. 소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바늘잎에 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떡갈나무와 상수리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조금 요란하지만 넉넉하고 여유롭습니다. 넓은 잎 때문일 것입니다. 숲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아이들이 조잘거리는 소리와 같습니다. 비가 모양과 두께가 각기 다른 잎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습지였던 곳으로 물이 흘러 도랑을 만들기도 합니다. 빗물이 자기만의 길을 찾거나 만들어 가면서 내려갑니다. 풀들이 뽑히고 씻겨 내려가고 허리가 휘청거리고 통째로 모레에 파묻혀도 빗물이든 풀이든 개의치 않습니다. 비로 인한 피해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가 내립니다. 하늘에 있는 미세 먼지가 씻겨 나갑니다. 주변에 쳐박혀 있었던 쓰레기 더미를 청소합니다. 개울 바닥과 강바닥까지 깨끗하게 됩니다. 땅속에 숨어 있었던 곤충들이 땅 위로 나와 활개를 칩니다. 사람에게는 피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비입니다. 도마뱀이 적의 위험으로부터 피하고 도망가기 위해 자기 꼬리를 잘내는 아픔을 감수합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이상 현상들은 지구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릅니다. 오래 살아야 백 년인 사람들이 몇 천 년 몇 만 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자연 현상을 어떻게 다 품을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