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생태계
자연은 평화롭습니다. 모든 것들이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서로 다투지 않고 자기 때를 기다립니다. 때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이런 모습이 정말일까요? 자연의 한쪽 면만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어떤 것도 자기를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헛점이 보이면 즉시 그곳으로 파고들어 자기 영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자연에서는 공생하고 공존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자기에게 이익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입니다. 자연은 총소리가 나지 않는 전장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지도 모릅니다.
산책길 옆에 칡덩쿨이 있습니다. 잎의 크기나 숫자에 비해 턱없이 작지만 앙증맞은 보라색 꽃과 향기가 좋습니다. 어디가 뿌리이고 줄기고 가지인지 알 수가 없이 뒤엉켜 있습니다. 이런 잎과 줄기로 자기 영역을 확실히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 영역을 넓히면서 살아남기 위해 옆에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갑니다.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간 칡덩쿨과 잎은 보기만 해도 답답합니다. 칡에 밟히고 포위되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나무가 가엾게 여겨집니다. 칡덩쿨에 포위된 나무가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칡의 잎이 다 떨어진 겨울과 칡의 잎이 무성하게 되기 전인 여름까지입니다.
나무와 칡덩쿨 사이의 전쟁을 그대로 두면 승리하는 것은 칡과 같은 덩쿨 식물일 것입니다. 덩굴식물이 주변에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의 숨통을 조이고 나무가 광합성 작용을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 보면 다래덩쿨에 의해 숨이 끊긴 나무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덩굴식물에 의해 쓰러지고 죽은 나무는 자기 자리를 다른 풀과 나무에게 넘겨 줍니다. 자기가 혼자 누리고 있었던 햇빛을 자기 손에서 풀어줍니다. 지금까지 나무 밑에서 숨어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식물이 힘을 펴고 일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런 풀과 작은 나무들이 부지런히 햇빛을 받아들여 영양분을 만들고 자기 몸집을 불려가면서 칡덩쿨을 제압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생태계의 모습이 계속 바뀌어집니다. 개체로 볼 때 삶과 죽음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자연과 생태계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