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요 오전반
2020.7.15.
수요오전반 후기입니다. 드디어 열하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9명이요. 날씨도 덥고 궂은 데다 온 세상에 번진 전염병과 본국에서 들려오는 우울한 소식들로 뒤숭숭했지만 전날 따온 블루베리를 나눠 먹으며 오순도순 여담을 나눴습니다.
천하를 통치하는 것보다 제 몸 하나를 다스리는 것이 더 중하고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연암은 ‘붓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휘둘러’ ‘참혹하게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을 꾸짖지만 그의 책을 읽는 우리는 ‘서로를 살리기 위해’ 한번 더 살펴보고 한번 더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연암의 혈기왕성이 샘나고 밀당하듯 농치는 문장이 얄밉지만 다시 조선으로, 내가 사는 현재로 돌아오기까지 여행을 계속해야겠습니다. 살짝 뒤처진 일행들, 어서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시작에 앞서 공부 좁 했답니다. 명•청 교체기 산해관전투, 테조 이후 건륭제까지 청나라의 통치 정책, 특히 한족을 포용하고 명의 제도를 대부분 수용한 점, 그 시기 명과 청 사이에서 갈등하던 조선의 내막은 인조와 소현세자의 불행을 통해 좀더 알게 되었구요. 역사 공부는 역시 골치 아프고 화나긴 해도 뭘 좀 알고 나면 좀더 잘 이해되기는 합니다. 발제해온 레지나 자매에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삼류선비’ 연암의 잘난 글들 중 특히 화제가 된 건 ‘중국의 장관론 -깨진 기왓장과 똥거름’, ‘수레제도’, ‘장대관람기’, ‘백이 숙제 관람기’, ‘호질’, ‘성인과 폭군’, ‘이별론’ 등이었습니다. 한결같이 지금 우리의 세태, 현실 정치,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생각하게 하니 웃다가도 속이 뜨끔하고 킥킥대다가 한숨을 쉬게 만드는 글들입니다.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은 것을 비난하려다가도 벼슬살이의 구차함과 권력의 폭력성을 따져보면 잘했다 싶습니다. 덕분에 후손들은 좋은 책을 읽고 있으니 말이지요.
청의 새로운 문물을 대하거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역사상 인물들을 평가하는 데서 연암의 정신과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의 살림살이와 편리함, 미적 감각을 중시하는 따듯함과 섬세함이 있는가 하면 벼슬아치들의 후안무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데서는 준엄하고 날카롭지요. 어떤 문장은 한없이 서정적이고 어떤 문장은 유머러스하며 어떤 문장은 재기발랄합니다. 마치 소설을 쓰듯 상상력을 펼치고 때론 독자들을 무시하는 느낌도 들며 때론 깊은 사색과 깨달음을 주기도 합니다.
체험 없이 남의 말에만 의존하는 사람과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대목에선 교황님의 ‘뒷담화하지 말라’는 말씁도 생각났구요. ‘족제비털’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는 ‘돌처럼 굳은 마음’이 떠오릅니다. 천하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라고 하는 사람이 만물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진다면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는 것. 아랫마을엔 뇌성과 폭우가 일어도 산 위의 하룻밤은 평온할 수 있듯 한 걸음 물러서면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는 것. 그런데도 현실은 아등바등 힘겹고 눈 한번 깜짝할 사이 삶은 ‘죽음’으로 끝나버립니다.
연암도 연암이지만 사행단의 하인들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압록강을 건너 열하까지 오십여 일을 걸어갑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연암이 말 위에서 졸 때, 달리는 말 위에서 구경하고 ‘말 모는 기술’의 위험을 따질 때 하인들은 견마잡이로 일꾼으로 위험의 최전선에서 고생을 감내했겠지요. 연암이 그린 하인들의 모습은 어리숙하면서 순진하고 의리있으며 줏대까지 있습니다. 정도 많고 눈치도 제법 있어 똘똘해보이기도 하지요. 쌍림과 장복의 수작에서는 ‘입 안에 있던 밥알이 별처럼 뿜어나올’ 뻔했답니다.
사실 연암이 모든 글을 기억에 의존해 쓰진 않았겠지요. 그때그때 급한 대로 술을 부어 먹을 갈아 써둔 것도 있겠지만 돌아와 여러 책들을 뒤져가며 글을 쓰고 다듬어 나온 것이 <열하일기>였겠지요. 기행문을 어떻게 쓸까 생각해봤습니다. 여행 당시의 기분, 감정, 생각들을 메모해두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지식보다 말이지요.
‘한밤중에 강물을 건너듯’ 삶은 위험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라네요. 물이 있는 곳, 되돌아오지 않고 흘러가는 곳이야말로 가장 괴로운 이별의 장소이구요. 물길이 끊기거나 막히면 결국 이별이고 절연이라는 뜻도 됩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과 마음의 물길을 잇고 싶습니다. 함께 살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물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느닷없는 죽음 앞에서 숲의 나무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내가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라니... 무엇이 부족했고 무엇이 필요했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든 이별이 같진 않겠지요. 두고두고 되새김질해야 할 대목입니다.
블루베리 송이송이를 따고 씻는 손길이 있습니다.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의 고마움이야 말해 뭐할까요. 시고 달고 떨떠름한 것들이 섞여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합니다. 비 온 뒤 서울의 하늘도 제법 청량하구요. 논산에서 보내온 풍경은 평온합니다. 마음의 물길 틔워 여행을 계속해보겠습니다. 다음 모임은 8월 5일 <2권> 다 읽고 종로에서 합니다. (위 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