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0. 7. 5. 22:50

눈 머금은 구름 새로

힌달이 흐르고

처마에 서린 탱자나무가 흐르고,

외로운 촉불이, 물새의 보금자리가 흐르고...

표범 껍질에 호젓하이 쌓이여

나는 이밤, '적막한 홍수'를 누어 건늬다

- 정지용-

 

'적막한 홍수'의 밤에 흐르는 것이 어찌 한두 가지 이겠습니까? 세월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숱한 기억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보이고, 홍수에 떠밀려 가는 자신이 보이고, 손흔들고 사라지는 가 싶었는데 다시 떠오르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생각이 파편되어 떠다니는 것이 보이고... 흘러가는 것들 사이사이로 고요하고 적막한 어둠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