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bi 2020. 5. 4. 21:40

5월 4일, 월요일


농  담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이문재 -


☞ 아주 오래 전,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던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언어, 이태리어를 공부하면서 지치고 한계를 느겼습니다. 언어 공부와 앞으로 해야 할 공부에 대한 부담을 거부하고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태어나서 혼자 처음하는 다른 나라 여행이었지만 두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신났습니다. 몇 개월동안 배운 짧은 언어였지만 여행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여행의 어려움을 상쇄시키는 즐거움과 자유로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처음 가는 낯선 수도원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혼자 다니고. 가지 않아도 되는 곳도 의욕에 넘쳐 방문하고. 몇 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사람이 자기 앞에 있는 음식을 정신없이 먹듯이,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모습, 건물과 경치 모두가 몸속으로 빨려들듯이 들어왔습니다. 


기쁨과 설렘, 채워지는 호기심,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전개되는 추리와 상상력으로 몸과 정신과 마음이 활성화 되고 있었습니다. 보고 들어야 할 것도 많았고, 보고 들었던 것을 현지에서 확인해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생각나는 사람들도 많았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떨어내야 할 것도 많았고, 잊어버려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해야 할 공부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그것을 외면하고 미뤄두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두 달을 돌아다녔습니다. 


몸이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몸과 더불어 함께 있는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눈이 휘둥그래지고 낯설어 감탄사가 절로나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있어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홀로됨이 더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함께 떠들며 좋아하고 이야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고통임을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가는 잘 기억할 수 없고, 내가 강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로웠던 것이라 해야겠죠. 이런 상태에서 한 달을 더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혼자 여행하지 않으리라와 비슷한 결심을 했습니다. 


이런 아픔의 시간을 겪으면서 더 성숙해졌던가?  이런 아픔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던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옛날의 아픔은 잊혀지고 그 아픔이 추억으로 되고,  과거의 기억인 이 추억을 그리워 하면서 살아도 되는 인간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