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제비
4월 13일, 월요일
토끼 목덜미를 잡으면 꼼짝을 못합니다. 목덜미를 잡고 토끼를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목덜미를 잡힌 토끼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빠진 자동차처럼 빠져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수렁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자기 운명의 제비를 누군가에게 잡힌 것처럼 여겨지는 때입니다. 그 제비에 따라 살 수 밖에 없는 경우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처럼 되는 때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런 경우에 대해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시 16, 5)라고 말합니다. 이런 시간은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집니다. 당하는 것이라고 해도 됩니다.
자기 운명의 제비를 하느님께 맡긴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두려움입니다. 자기 운명을 맡긴다라고 말하기 전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모두 다 받아냈을 것입니다. 자신도 자기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고, 자기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사람들도 한계를 느꼈을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바람과 기대가 모두 무너진 상태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가 아니면 인간의 자기 운명을 하느님께 맡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마저도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견디어 내야만 합니다. 삶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있는 것과 꼭같이 자기 앞에 놓여있는 어둠에 대한 맹목적인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냥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주님의 빛에 의지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 자기의 생각과 기억과 체험 등. 자기의 모든 것이 어둠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을 어둠의 밤이라고 하든, 신비적 죽음이라고 하든. 이것을 통해 자기 운명의 제비를 하느님께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