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 대해서
2월 20일, 목요일
나의 수형 생활 20년 가운데 독방에 있던 기간이 약 5년 정도가 된다. 물로 여러 번에 나누어 지낸 것이긴 하지만 이 5년간의 독방 시절에 열중한 것 중의 하나가 명상이었다. 구속.취조.재판.언도 등 불안과 초조로 점철된 나날을 거치는 동안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심신을 다시 조각 모음하듯 정리하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명상이 가져다 줄 지극히 명징한 정신의 영역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상이 그러한 정신 영역으로 인도해 주지는 않았다. 무념무상의 어떤 지점에서는 우주의 정보 체계와 소통하는 극적 체험도 가능하다는 매력적 이론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무념무상의 단계에서부터 실패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대로의 명상법을 찾게 되었다. 그것은 명상이라기 보다는 추체험追體驗 이었다. 독방의 면벽 명상은 최정적으로는 우리의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독법과 나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것으로 귀결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면벽명상의 잠정적인 결론은 내가 만나고 겪은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들이 내 속에 들어와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정체성은 곧 그 개인속에 체화된 시대의 양이라는 것이 현재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의 정체성이란 그것(개인속으로 들어와 체화된 것)을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서 저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건져 내는 많은 추억들은 우리가 몰두하고 있는 맥락에 의해서 선별되고 또 전체 맥락속에서 각각 다르게 재조직되고 있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신영복, 돌베게, 2017, 101-103)
☞ 명상은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과 관계없는 정신 세계에만 몰두할 때, 사이비 명상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명상이 필요할 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삶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명상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일시적으로 위한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환각제를 복용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명상하고 있는 짧은 시간에만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명상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이해로 수없이 많은 명상상품이 출시되고 있습니다. 시중에 새롭게 출시된 명상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호응은 그런대로 좋습니다. 명상상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매력과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내적으로 불안하고 현실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욕구에 괴로워하고 있는 현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명상상품 회사는 교묘하게 다가옵니다. 몇 년 전 까지 편하게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었던 전화기를 새것으로 바꾸듯이,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럴듯한 명상상품 하나 쯤 갖고 있어야 할 것처럼 사람들을 오도합니다.
사람의 약함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을 사기라고 합니다. 자기를 현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기가 어떤 것에 의해 쉽게 넘어가는 지 알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