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잡음과 마음잡음
2월 12일, 수요일
아빠가 "서울에 가서 자리 잡으면 연락할께"라고 말하며 가족을 떠났습니다. 집을 떠난지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서 가족들을 서울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곳 새롭고 낯선 도시에서 뿌리 내리고 살기 위해 모든 가족들이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요새는 아빠가 다른나라로 나간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을 가끔 봅니다.
자리를 잡는다는 것,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인입니다. 그 자리가 없으면 뿌리 내릴 수가 없습니다. 자리잡고 앉아 있을 수가 없으면,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떠돌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사람들을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리잡음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 어떤 일도 하느님의 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자리잡음과 비슷한 마음잡음도 있습니다. 자리잡음이 물리적인 공간을 말한다면, 마음잡음은 마음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두 가지는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물리적으로 조건지워진 세상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리잡음이 먼저겠지만, 아주 깊은 관련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자리와 마음은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판단하고 평가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입니다. 그 사람이 살고 있었던 자리와 더불어 그 사람의 마음 가짐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실에서는 그 사람이 자리와 처지만 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사람의 내적인 상태까지 고려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자리잡고 살았던 처지와 그 사람의 마음잡음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평가할 때 신중함과 사려깊음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