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공동체
1월 23일, 목요일
『믿음의 역동성』, 폴 틸리히/최규택, 그루터기하우스, 2010
* 믿음의 행위는 모든 인간의 영적인 삶안에서 일어나는 행위처럼 언어와 공동체에 의존한다. 영적인 존재의 공동체 안에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살아있는 언어다. 언어가 없는 곳에는 믿음의 행위도 종교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영적이 삶 안에는 일반적인 언어와 특별한 언어가 있음을 의미한다. 종교적인 언어, 즉 상징과 신화의 언어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창조된 것이며 이 공동체 외부에 있는 공동체들은 이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 공동체 안에서 종교적 언어는 믿음의 행위가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게 한다. 믿음은 그것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믿음의 언어를 통해 모든 인격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언어가 없다면 믿음은 소경이 될 것이며 어떤 내용을 향해 인도되지도 못할 것이며 믿음 그 자체를 인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언어 공동체만이 인간에게 자신의 믿음을 구현시킬 수 있다. (60)
☞ 믿는이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를 지탱시키고 지속하게 하는 것은 언어입니다. 여기서 언어라고 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교류를 위한 모든 수단을 말합니다. 소리말과 글말은 이 언어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믿음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신심을 표현하는 행위가 있고, 확립된 교리가 있으며, 신학적인 체계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믿는이들의 삶안에 들어가 있고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들의 삶을 이끌어 갑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화 활동과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창조의 결실이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신심과 믿음의 고백이 외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런 유산을 물받고 그 흐름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해석하여 자기 것으로 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일을 하는데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교회안에서 그것을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의 언어가 놀랍고 신기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것으로 남게 됩니다. 믿음은 인간 개인의 결단과 용기와 투신이라고만 할 수 없고, 받아들임이고 공동체안에서 시작되고 공동체와 더불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 종교회의 또는 주교회의 또는 교리서들은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무오성'의 개념을 확립ㅁ시키면서 의심을 믿음의 요소에서 배제시켜 버렸다. 그들은 믿음에 대한 무오한 진술에 의심의 개념이 절대 들오오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결국 믿음은 정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어떤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의심을 자신의 한 요소로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떻게 믿음의 공동체의 교리적 진술들과 연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가. 믿음의 공동체의 궁극적 관심인 교리적 표현은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 믿음을 표현하고 있는 교조적이고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모든 것들은 그 차제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정되어 한다. 믿음의 공동체의 표현 안에 비판젃인 요소들이 존재하고 믿음의 행위안에 의심의 요소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개신교의 원리'이다. (65-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