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
1월 22일, 수요일
『믿음의 역동성』, 폴 틸리히/최규택, 그루터기하우스, 2010
* 믿음의 행위는 무한한 것에 의해 사로잡혀 있고 무한한 것을 향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에 의한 행위다. 이것은 무한한 것이 유한한 행위의 제약 너머에서 유한한 것에 참여하면서 나타나는 행위다. 믿음은 거룩을 경험하고 있을 때 확실해 보인다. 무한한 것이 유한한 것과 관계를 맺고 있을 때 불확실하게 보인다. 믿음 안에 있는 불확실한 요소는 사라질 수 없다. 이것은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기며, 용기는 믿음의 한 요소다. 용기있게 불확실성 위에 서 있을 때 믿음은 역동적인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 (50)
* 인간이 궁극적 관심으로서 가지는 믿음 안에는 인간이 감수해야 할 가장 큰 위험이 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인 구체적인 신의 소멸이라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믿음이 궁극적 관심으로 이해된다면 의심은 그 믿음안에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그래서 믿음은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52-53)
* 믿음은 용기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음 자체에 대한 의심을 포함할 수 있다. 용기의 행위는 믿음의 역동성 안에 속해 있는 위험성을 받아들인다. (56)
* 의심은 믿음의 행위 안에 있는 영구적인 경험은 아니지만 믿음의 구조 안에 있는 요소로서 항상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와 궁극적 관심의 상태 안에서 나타나는 용기 있는 자아의 확신이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의심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믿음의 부정으로 간주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행위 안에서 항상 존재하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할 믿음의 한 요소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존재론적 믿음은 동일한 선상 즉, 궁극적 관심의 상태라는 선상에 있는 실체이다. (57)
*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믿음과 의심의 내용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진지하고 궁극적인가에 기초하고 있어야 한다. (58)
☞ 믿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다가온 궁극적인 것에 대한 인격적인 응답입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려는 결단과 용기, 자기가 받아들인 궁극적인 것과의 관계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투신하는 용기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용기를 믿음이라고 할 수 없는데, 용기와 더불어 의심이 믿음안에 언제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과 의심이 없는 믿음은 자기 확신과 신념으로 본인과 타인을 억압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는 평화로움과 든든함과 더불어 불안과 의심이 함께 있기 때문에 순수한 믿음은 없습니다. 어느 순간 순수한 믿음이 있고, 어느 순간 의심하는 것입니다. 흔들리고 의심하고 불안해 하면서도 믿음에로 돌아가는 것이 있을 뿐입니다. 순수하고 강하며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불안과 의심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것도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좀더 넓은 안목으로 보면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믿음은 태생적으로 불안과 의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을 용기로서 극복해 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계를 믿음의 역동성, 역동적인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안에 있는 의심과 용기의 역동적인 관계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