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것과 새 것
1월 20일, 월요일
어렸을 때 누나들이 썼던 책을 물려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위에 누나들 밖에 없어 옷은 넘겨받지 않았지만 교과서를 물려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고, 새책을 구입 할만한 돈이 없던 때였습니다. 물려받은 헌 책이 싫어 짜증내고 우는 아이를 위해 가끔 새 책으로 새 학기를 시작할 때도 있었습니다. 새 책을 받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지나간 달력으로 새로운 표지를 입히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입혔던 표지를 벗기고 새 책 그대로 남아았는 책 표지를 보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30년 도 더 된 때에 수도원에서 헌옷을 받았습니다. 먼저 들어와서 수도생활을 하다가 다른 길을 찾아 떠났던 선배의 수도복이었습니다. 체구가 비슷하다는 것 때문에, 물려받은 것이어서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 옷의 주인처럼 도중에 그만둘 것만 같아 찜찜했습니다. 그 수도복이 너덜너덜 헤졌습니다. 몇 년 전, 가까이에 있는 의상실에 가서 누벼달라고 했지만 성한 곳이 별로 없어 누빈다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으리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입을 때 손을 조심하지 않아 구멍이 생긴 곳이 있지만, 지난 시간의 인연으로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입고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중고물품을 받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중고이기 때문에 사용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헌 물건이어서 성능이 그저그렇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중고 물품 안받으면 안되나요?"
지난 것이고 오래된 것이라 하여 모두 좋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없다면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토대가 없어 어둠의 심연으로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것이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그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적응하는 시간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모르는 두려움도 감당해야 합니다.
낡고 오래된 것을 떨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너그러움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떨어고 받아들여야 할지 살펴야 합니다. 이것을 성찰이라고 합니다. '성'의 한자를 풀이하면 소년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과거를 보면서 포기하고 떨어내며 두려움없이 앞을 향해 발을 내디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속에는 과거가 들어와 있고 미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떠났지만 미래를 향해 나가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