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사람들
12월 22일, 일요일
이곳 피정집에 몇 일 머물다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종착역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터전인 이곳이 그분들에게는 간이역과 같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분들이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떠날 수 있고 자기가 찾아 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으로 이곳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몇 일 머물면서 이곳이 오래 머물러서는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삶에 지쳐서 오셨다가 가고, 세상에서 도망쳐 왔다가 세상으로 다시 내몰리듯 돌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추억과 약간의 홀가분함과 자기 집을 떠날 때와 비슷한 자유로움을 간직한 채, 다시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갑니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 뿐 나에게도 이곳은 간이역일 뿐입니다. 내가 이곳 간이역으로 오기 전에 떠난 차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다음 차가 올지도 모르고, 내가 타고 가야 할 막차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차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 먼 곳에서 오는 내가 만나야 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이 막차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래서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건가?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이 가득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둠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가? 이렇게 기다라고 있는 동안 밖에서 사륵사륵 눈이라도 내린다면, 이 기다림은 희망과 설렘과 기쁨으로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