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영성/똘레제

죄에 대해서

leibi 2019. 12. 7. 10:42

12월 7일, 토요일


『영원한 지금』, 폴 틸리히/김광남, 뉴라이프, 2008


* 우리로부터 나오지 않으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또한 우리가 미워하는 동시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어떤 힘이,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처한 곤경입니다. 우리는 그 힘에 매료되고, 그것과 협력하고, 그것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약 우리가 그것에 맞서고 그것을 통제할 또 다른 힘에 의해 붙잡히지 않는다면, 그 힘이 우리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를 파괴할  수 있는 것에 매료됩니다. 그리고 때로 그것에 의해 파괴되기를 바라는 숨겨진 갈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 71)

*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면서 우리의 의지를 그 의지 자체와 맞서도록 만드는 어떤 힘을 경험합니다. 그 힘의 이름은 '죄 sin'입니다...  내 자신을 포함해 기독교의 선생들조차 '죄'라는 단어 사용을 피하려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추한 것만큼이나 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과 대면하고 그것이 참으로 무엇인지 묻는 편이 더 정직할 것입니다. (75)

* 바오로는 '죄들'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 SIN'에 대해서는 자주 말합니다. 대문자 S로 시작되는 단수로서의 죄, 즉 세상과 마음 그리고 사람들과 국가들을 지배하는 힘으로서의 죄입니다. (77)

* '죄들 sins'은 '죄 SIN' 즉, 소외와 내적갈등을 일으키는 힘의 드러남이라는 것을 압니다. 죄는 우린 안에 존재하며,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행하게 합니다. "이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입니다."(로마 7,17);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로마 7,20) (79)

* (그러면 죄가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죄가 그 안에 숨는 '우리의 지체들'입니다. (바오로는) 그런 장소를 '육신 flesh'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죽을 몸'에 대해 말하기도 합니다. (81)

* 바오르는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성경 전체는 우리가 하느님과 세상과 우리 자신으로부터 소원해진 것에 대해 우리의 몸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몸과 육신과 지체는 우리의 죄로 물든 부분이고,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와 마음과 정신은 우리의 죄없는 다른 부분을 이루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전 존재,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우리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육신인 동시에 정신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죄의 힘에 예속되어 있고 그 힘에 맞서고 있습니다. (82)

* 죄에 관해 설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여러 가지 죄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만약 우리가 죄를 간접적으로 바라본다면, 즉 우리로 하여금 죄와 맞설 수 있게 해주는 소외를 극복하는 재결합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죄에 대한 몰입에 내포된 위험들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죄는 우리가 거기에서 나오고 거기로 돌아가야 하는 신적 근거(the divine GROUND)에 대한 참여로부터의 돌아섬입니다. 죄는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섬이며, 우리 자신을 우리의 세상과 우리 자신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죄는 모든 사람안에 심지어 가장 엄격하게 자기를 통제하는 사람 안에서조차 존재하는 충동, 가능한한 세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려고 하는 충동입니다. (85)

* 바오로는 시적일 뿐 아니라 심원하게 심리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말합니다. 우리의 지체안에 거하는 죄는 "너희는 ... 하지 말라"는 말에 의해 깨움을 받는 순간까지 잠들어 있다고 말입니다. 죄는 계명들을 이용해 살아납니다. 금지사항들은 잠들어 있는 (죄의)갈망을 일깨웁니다. (86)